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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Permissions Most MKs Need

When I was in college, my mom would always wonder why I loved hanging out with MKs so much. She knew that the bond I had with other MKs was so much tighter and stronger than with other friends. At times, she even worried that I was not assimilating well in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in Southern California and was isolating myself too much by surrounding myself with MKs. 

Rereading this next article has given me a new understanding of what I most needed in my 20's. I needed the six permissions described below: permission to be a kid, to fail, to grieve, to dissent, to doubt, and to redefine. My 20's were filled with confusions and doubts, failures and grief, but around me were my MK friends who gave me room to continue wandering and questioning. I found the safety of my MK friends who gave me freedom and permission to jump into the unknown and personally meet God in the dark. 

Below is an old picture of us in 2008. Silly and free as we are, unafraid of what's ahead because we have each other...

**The original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can be found here.**

 

MK에게 필요한 6가지 권한


권한. 최근 사역여행에서 만난 MK들과 그 부모님과의 대화중 계속 떠올랐던 단어다. 기대와 의무감으로 가득한 MK 문화에서 이 단어는 치유처럼 느껴졌다.
 
다음 6가지 권한은 아직은 어리고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문화의 선교지 환경에서 자란다는 의미를 모르는 어른들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MK 세대를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하다
.
 
 

아이다울 수 있는 권한

 
선교사 자녀들이 목회자 자녀들과 비슷하게 다른 또래들보다 더 높은 기준에 부합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에게는 ‘항상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끊임 없는 압박이 있다. 잘해라. 공손해라. 친절하라.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불평하지 말아라.
 
이렇듯 MK들은 또래 아이들보다 예의 바르고, 똑똑하고 성숙하거나 최소한 그런 것 처럼 보여야 한다는 보편적인 기대가 힘 빠지도록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MK가 잘하는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비현실적인 기대에 부흥하려 애쓰는 것이다.
 
몇 주 전 선교사 가정을 방문했을 때 나는 11살 남자 아이에게 가족이 왜 루마니아로 이사를 가야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마도 내가 방문했던 3주 동안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말은 아이의 엄마가 한말이었다, “아니야 아들, 엄마와 아빠가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왔지. 너의 역할은 아이로 사는 것이야.”
         
얼마나 심플하고도 자유를 주는 말인가! MK가 된 지 얼마 안 된 그녀의 아들은 자신의 엄마의 입에서 아이답게 있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대들어도 되고 발을 구르거나 반찬투정을 하거나 불평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그에 따른 대가도 치뤄도 된다. 그저 아이답게 행동하는 MK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수치심은 들지 않을 것이다.
 


실패할 수 있는 권한

         
아이들은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할 것이고, 지시 사항을 잊어버릴 것이고 규율을 어길 것이다. 이것은 MK든 MK가 아니든 그들이 하는 실수와 나쁜 행동들이 결코 용서 받지 못할 결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교계에서는 암묵적으로 실패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둠 가운데 빛이 되기를 원하신다.”
“너는 너의 중학교에서 하나님을 대표한다.”
 
부드러운 당부 같이 들릴 수 있으나 이러한 당부들은 아이들이 불가피한 실수를 할 때 더 깊은 비난의 근거가 된다.
 
MK들에게 가족이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이유로 불합리하게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최악의 실패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불완전함은 곧 가족의 사역에 누를 끼치고 하나님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실패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나쁜 성적을 받는 것도, 축구팀에서 잘리는 것도, 페이스북에 부적절한 것을 올리는 것도 선생님의 책상 위에서 잔돈을 훔치는 것도 친구에 대해서 뒷담을 하는 것도 단순히 그 행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자신들 스스로는 물론 가족들과 하나님을 창피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타국에서의 생활과 잦은 이동과 작별에 이미 삶이 복잡해진 6살짜리 아이에게 무거운 영적인 부담을 주게 된다. 자유를 주는 “실패할 수 있는 권한”은 과하게 자기 비난을 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
 
 

슬퍼도 되는 권한

         
MK들이 짊어지는 가장 무거운 짐은 어린 시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잦은 작별인사이다. 선교지는 누군가가 항상 떠나는 일시적인 공간이다. 반복되는 이별은 상실을 예견 하게 하고 그것은 MK들이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때 혹은 친구를 만들 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세상에서 암묵적으로 MK에게 기대하는 용기나 끈기는 수많은 상실감을 겪는 MK들에게 빨리 슬픔에서 해어 나와 신앙에서 위안을 얻고, 문제없이 씩씩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준다. 슬픔을 느끼는 과정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여유조차 조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더 문제는 사역을 하는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강하게 슬퍼하는 것을 보여주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선교사 부모들과 선교사 커뮤니티가 선교사 자녀들에게 슬픔을 표현하고 극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은,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과거의 상실감으로 정서적 불구가 되어 살아가는 MK들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많은 MK들은 하나님에게 자신이 느끼는 상실감을 탓하기 때문이다.
 

 

반대 할 수 있는 권한

         
MK들은 자신들이 부모님과 한 세트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MK들의 부모님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부모님의 선교에 물질적인 지원을 주셨다. 그들은 해외로 나오는 것에 성공했고 좋은 일을 하고 있다. 감히 어떻게 부르심(calling)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가? 감히 어떻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학교를 바꾸는 것을 반대한다는 말인가?
         
내가 20년 이상동안 만나본 MK들 중 부모님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MK들의 쓴 뿌리와 분노가 가장 깊었다.
         
명확한 비전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어른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부르심(calling)을 향해 길을 닦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리고 그 수중에 있는 자녀들이 같은 동기를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부르심이 더 많은 변화와 비례한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큰 독이 될 수 있는가.
 
삶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서나 떠나야 할 때를 통보하기 전에 MK의 부모들은 이 주제를 부드럽게 상의하면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애정과 관심으로 자녀들에게 마음을 집중하고,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귀기울인 상태로 말이다. 이러한 입장을 취했을 때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과 그의 부르심의 과정에는 부모가 역할을 다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에 놀랄 수도 있다.
         
반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자녀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와 감정을 표현하는 자유를 느낄 것이고 이것은 더디더라도 가족의 모든 일원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원하시는 바를 분별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개방적이고 건강한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의심할 수 있는 권한

         
모든 MK들이 구원을 받지 않았다. 모든 MK들이 하나님이 진짜라고 믿지 않는다. 모든 MK들이 자신의 부모님의 신앙을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나도 선교사로 몇년 사역한 후에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났다. 하지만 MK의 신앙에 관한 고정관념은 후원교회와 MK의 가정에도 존재한다. 당연히 구원 받았겠지! 당연히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겠지! MK들인데!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안에 삶이 녹아들어 있는 청년은 의심이나 의구심을 갖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아주 작은 의심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 청년의 가족과 사역에 수치심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MK들이 믿음이 부족한 것에 대해 고민하며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할 때 침묵을 강요 당한 것을 보았다. 아니면 그들이 의구심을 나타내는 말을 꺼냈다가 무조건적인 순종을 하도록 설교를 듣는 것도 보았다. 또 확신이 없는 것을 드러냈다가 회개하도록 비난 받는 것도 보았다.
         
믿음은 상속되는 신념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동 가능한 물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MK들에게 믿음을 갖도록 부담을 주는 것과 더불어 믿음의 본을 보이도록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계속 이어지는 듯하다. 가뜩이나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사역과 뒤엉킨 세계관으로 복잡해진 영혼들에게 이 얼마나 불공평한 부담이란 말인가.
         
의심할 수 있는 권리는 그저 구멍 난 믿음의 공간을 고찰해보는 것과 다르다. 이것은 영원한 결과를 위해 솔직한 싸움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부모들은 이해의 폭을 더 넓혀야 한다. 믿음의 공동체들은 이해의 폭을 더 넓혀야 한다. 교회들도 더 넓혀야 한다. 어른들과 동료들은 이것을 하나님이 MK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그 과정을 축복해야 한다.
         
의심할 수 있는 권한은 진실한 신앙을 갖기 위해 꼭 필요하다.
 
 

가치를 재정의 할 수 있는 권한

         
 이 메시지는 선교사 공동체로부터가 아닌 내면에서 오는 메시지이다: 당신이 살 수 있는 최고이면서 가장 가치 있는,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삶은 그분의 사역에 헌신된 삶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이다.

최고의, 가장 가치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삶은 그 분과의 관계가 중심이 된 삶이다. 그분을 위한 일이나 희생이 아니다. 그 분과의 관계이다
         
선교사 세계에서 우리는 가치있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단편적으로 정의한다. 교인들은 선한 의도로 “너의 부모님은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계셔”라고 하며 이 말에 한 번 더 힘을 싣는다. 교회들은 선교사들에게 관심과 명예 그리고 헌금을 줌으로 그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하고, 그렇게 선교사 가족들을 주목받게 하며 다시 한 번 위의 말을 강조한다.
         
그래서 댄서가 되고 싶은 MK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선교의 필요성과 많은 사역거리를 보고도 고작 하고 싶은 것이 춤을 추는 것이라니? 창피하다. 고작 하고 싶은 것이 전기기사라고? 슬프다. 고작 하고 싶은 것이 음악이라고? MK로 자라서 너무 보잘것 없는 사람이 된것이다.  
         
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직업과 어릴 때부터 배운 가치 있는 일의 정의 사이에서 격차를 해결하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성인 MK들을 보았다. 이 잘못된 정의가 그들의 관점을 왜곡시켜 몇 십 명이 넘는 직원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성공적인 비즈니스맨도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느낀다. 하나님의 창의성을 나타내며 비관적인 세상에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아티스트도 부모님이 열정적으로 뛰어든 부르심을 배신한 것처럼 느낀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아버지들도 그들의 삶이 가치 있지 않다고 염려한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가에 있다. 우리가 어느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느냐에 상관없이 우리의 존재 자체로 빛나는 빛이 되는 것이지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일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은 말이 필요 없는 작업이다. 이 세상에 대한 염려를 춤으로 승화시키는 댄서, 목수의 정직함과 그의 완성도 높은 작품, 어린 영혼을 양육하는 선생님의 마음처럼 말이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선택해서 그분을 빛나게 하는 것에는 깊은 가치가 있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권리가 좋은 의도를 가진 선교사 부모들의 서툰 말에 의해서 상처입거나 저지 당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권한이라는 선물

         
앞서 다룬 많은 기대들은 암묵적이기 때문에 그 기대들을 완화시키기 위한 발언들을 할 때는 명확하게 전달하고 자주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한창 성장하고 있는 어린 자녀들에게서 부담감을 덜어 주고 싶은 선교사 부모들을 향한 나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자녀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이 네 가지를 실현해 보라:
 
  1. 자녀들과 열린 대화를 나눠라.
  2. 단순하고 모호하지 않은 단어 선택으로 자녀들이 불합리적인 기대에서 자유롭도록 하라.
  3. 은혜와 자비를 보여라.
  4. 당신이 전하는 설교를 실천하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여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대화를 시도하는 용기를 가지라. 이것은 선교사와 MK에게 건강한 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ABOUT THE AUTHOR & TRANSLATOR

Michèle Phoenix


Raised in France by a Canadian father and an American mother, Michèle is a mentor, writer and speaker with a heart for MK's. She taught for 20 years at Black Forest Academy (Germany) before launching her own ministry advocating for Third Culture Kids. She now travels globally to consult and teach on topics related to this unique people group. She loves good conversations, mischievous students and Marvel movies.

Michèle played a pivotal role in Sunmin's life at Black Forest Academy, the boarding school I attended in Germany. She helped me process through many MK and TCK issues and offered me life-changing counsel that still guides my thinking and philosophy. Michèle serves as one of the board members of Mi Casa Tu Casa Community and continues to offer wisdom and insight on MK's, TCK's, and missions. 

Yoorim Song

Yoorim is an MK from Kazakhstan and has been Sunmin and Jun's friend since 2002. At one point, she was also Sunmin's roommate After attending Azusa Pacific University, she is currently studying Counseling Psychology at Yonsei University Graduate School in Korea. The picture below was taken at the LAX Airpot when Yoorim was moving back to Korea permanently in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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